Fight Club 파이트 클럽 | 남성성과 자본주의 비평

2014. 6. 26. 10:13Film

Fight Club 파이트 클럽 | 남성성과 자본주의 비평


출처

http://voices.yahoo.com/the-movie-fight-club-uses-aggression-masculinity-1833384.html

종종 남자와 남성성에 대한 영화라는 생각때문에, 사회경제적 구조의 비판으로써의 fight club 진짜 의미가 불행하게도 가려져있다. 영화 fight club 자본주의적인 소비주의를 한탄하지만, 진정 도전적인 어떤 가정에는 미치지 못했다.



박스 오피스에서, 파이트 클럽은 가지 이유로 잘하지 못했다. (주로 컬럼 바인 총기 난사 사건 이전 해에). 그러나 이렇게 빨리 시간의 짧은 시간에 컬트 상태를 얻은 영화가되지 않습니다. 전국 캠퍼스는 무료 파이트 클럽보기 토론 모임을했다.

타일러 더슨의 인용은 무료 정기간행물로, 그리고 욕실 칸막이로 미끄러졌다. 사이트들은 모든 인터넷을 통해 팝업했다. 혁명적인영화는 여러 다양한 리포트의 초점이 되면서,동시에 폭력적 장면으로 비난 받았다 

파이트 클럽이 때리는 사람들의 얼굴에 관한 것이라고 사람들이 개탄하는 것은 놀랄일은 아니다. 그리고 분명히, 페미니스트와 프로이드파도 마찬가지로 영화를 분석한다. 그러나, 모든 이런 분석은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다. 비록 파이트 클럽이 남성성에 대한 영화로 기억될 지라도, 그것에 대해 말할 만한 어떤 관심이나 일관성과는 관련이 없다.

실제 관심의 초점은 개의 인간성을 말살하는 효과이다 : 소비주의, 협동 조합주의, 그리고 자본주의. 파이트 클럽은 대부분 미국인들이 의미없이 반은 죽은 삶을 사는 방식을 규탄하는 비평으로, 인간 정체성에 대한 정치적, 철학적인 영화이다. 아마 성에 대한 담론으로 규정하는 것은  (a) 단지 영화에서 헐리웃 관심을 모으기 위해서. (b) 대중에 입맛에 맞는 미국인의 삶의 방식을 버리도록 만들기 위한유일한 수단이었다.




부적절한 나레이터 “ 에드워드 노튼이 연기했다. ..   이상한 캐스팅 선택은, 또한 주요 역할 브래드 피트.. ..

반면 피트가 다소 -틀에 박힌 각본을 선택한다는 평판을 가진다

매력적이고 근육의 캐릭터 타일러는 노튼의 잭에게 “너는 뭐가 되고 싶은데 ?” 생각은 문화적인 규범들로부터 깨지기 어렵다


타일러 더슨은 어떻게 남자가 완벽한 몸에 맞추도록 하는 광고에 굴복해서는 안되는지를 호언장담한다.  장면에서는 그가 캐빈클라인 광고에 얼마나 화내는지 보여주듯이, 다음장면은 “mens heath” 이상적인 식스팩  복부, 완벽함을 보여주며셔츠안 입은 그를 보여준다



책의 핵심, 그리고 영화의 핵심에서 자본주의에서의 삶이 얼마나 견딜 없는, 얼마나  소외되는지

그래서 그리고 우리가 실제로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담배를 우리 팔에 꺼야할 필요가 있는지싸울 껴야  필요가 있는지를 말한다. 사무실과 공장의 마음을 멍하게 하는 공포와 비교하면, (그곳에서 우리는 시계를 바라고, 1분이라도 밖에서 살기 희망하며거의 어떤 “실제의 경험도 없는 보다는 낫다.



파이트 클럽은, 자본주의적 비평 실패하면서, 강력하게 우리의 정치적 상상령의 한계를 보여준다. 특히, 헐리웃과 같은 대량 매체에 표현된 마찬가지로. 파이트 클럽은 (현대의 정치, 주로 남성성에 대한 공격으로써, 문제를 정의함으로써 과대선전된)  소비주의를 이해한다.  

영화는 소파나 카푸치노 메이커에 대한 그들의 남성성과의 타협의 거부하는 남자에 대한 탐구가 되었다. - 그런 것들은 잭이 “IKEA  둥지를 트는 본능 관계가 있다. 남성성과 소비주의간에 연결성은 파이트 클럽이 깊게 남성성에 대한 보수적인 관점을 가지는 증거이다. 영화에서, 남성성은 산업화의 생식능력  이며, 물리적 노동과 전쟁에 있어서 강력히 주장하는  /자신간 넘치는 남성의 힘이다




또한 터미네이터 3부작의 인기에서 증명되었듯이, 중요한 걱정은 우리가 고안한 강력한 경제와 기술적 혁명은 우리의 인간성을 파괴하는 것이며, 살아있다고 느끼는 우리의 능력을 잠재우는/가라앉히는  대한 공포이다. 성의 전쟁은 단지 진짜 문제로 부터의 주의를 분산 뿐이다. 진짜문제-그것은 어떻게 시스템이 우리 모두를 다루느냐이다. 그것은 이상 소비 사회에서 착취 만큼 간단한 아니다

파이트 크럽이 도전하기 시작하는 것은 어떻게 우리가 정치가, 광고주들, 그리고 고용주들에 의해서 조작되고, 유혹되고/꾀임당하고, 겁을 먹게되고, 빼앗기고/끌어들임 당하는지에 대한 것이다통제주의자는 개인적이건 정치적인 수준에서건 대안이 없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교활하다

; 그것은  세계적 자본주의의 경기 에서 우리가 지켜야 하는 mantra-like 속삭이면서  소비주의를 스스로-지탱하는 시스템을 만든다.


 


영화는 (혁명을 호소하는 반면) 대신 이런 선택의 부족함을 보강하고 있다. 처음 싸움의 겸손한 도망-취미를 넘어서서, 타일러(그리고 ) 대신 조직적인 지하 시스템을 만들었다. 완전히 사회적 이상과 반대되는


프로젝트 메이엄은 진정한 혁명적인, 노동 계급 조직의 바탕을 형성하는 방식이 아니다. 비록 거의 틀림없이  아나키즘(무정부주의) 원초주의에 의해서 영감을 받았다고 해도, 프로젝트 메이험은 전술에서 명백히 파시스트 조직이며 테러리스트이다



신용정보를 파괴하기 위해서, 신용카드 빌딩을 파괴하는 것이 모두를 동등하게 것인가 ? 그러나 메이험이 카리스마 있는 리더를 가진 완벽한 컬트(광신적 교단/숭배)로써 기능할 , 어떻게 이것이(모두 평등한세상??)  정말 일어날 있을까 ? 멤버들은 질문없이 타일러의 지시를 순종한다. 종종 특정 행동의 목적도 알려고 하지 않고. 타일러는 프로젝트 메이험이 총과 같다고 주장한다 : 모든 것은 방향으로의 폭발에 초점을 둔다. 이것은 스스로 임명된 엘리트에 의해서 이룰 없는 것이다 ; 폭발은 스스로 조직되고, 스스로 포커싱되어야만 한다

파이트 클럽은 계급 투쟁과 소비주의의 진정한 메시지를 가리면서, 남성성에 대한 것인 한다. 반면 혁명적인 포스트 모던 영화로써의 컬트 상태를 즐기는 동안, 실망스럽게 잠재력에는 미치지 못한다.  매우 조직적인 군대들은 전쟁을 이길 있다. 하지만 혁명은 아니다. 훈련되지 않은 폭도/집단  마찬가지다



its only after we've lost everything that were free to do anything 

- Tyler Durden- in film fight 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