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 그리고 라캉의 상징계

2016. 10. 28. 10:08Book

욕망 그리고 라캉의 상징계


아이워치1이 나왔을 때 나는 동료들한테 관심없는듯 그랬다. 아이워치는 아무리 봐도 쓸모가 없는것 같다. 그냥 어른들 장난감이네. 그리고 정말 관심이 없었다. 있었는데 없는 척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최근에 아이워치2가 나오면서 아이워치1이 가격이 내려갔다. 갑자기 아이워치에 관심이 갔다. 최근 잘 쓰고 있던 스포츠밴드 미스핏을 잃어버린 탓도 있겠지만 애플의 광고에 혹한 것이 사실이고 갑자기 써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아이워치 없어도 사실 아무 불편없다. 오히려 매번 충전해야하고 챙기고 그런게 불편할 수도있을거다. 그래도 자꾸 눈길이 가는건 왜인가. 문자와 전화를 noti 받고, 심박수도 젤 수 있다. 약간의 편리함. 조금더 좋은것. 뽀대. 아니면 근본적인 결여 때문인가. 

라캉의 '에크리' 책을 보면 욕구, 요구, 욕망를 구분짓는다. 욕구는 아이가 배고 고픈거다. 요구는 아이가 "밥 달라고" 말 하는거다. 그런데 아무리 말로 잘 설명을 해도 욕구를 다 반영할 수는 없단다. 말은 상징계다. 욕구와 요구의 차이가 욕망을 만들어 낸단다. 그리고 우리가 내 욕망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은 '타자의 욕망' 이란다. 그러니까 아이에게 최초의 요구(부름)에 응한 대타자는 엄마이고, 아빠이다. 주체는 대타자에게 요구하고 그 요구에 응답받았을 때 요구가 완성되니까 대타자는 절대적 진리의 위치에 있단다. 아이가 엄마에게 밥달라고 하면 절대 권한은 엄마에게 있으니까.






다시 아이워치2가 나왔을 때 사무실에 모여있던 직원들은 서로 아이워치에 대해 GPS도 들어가고 방수도 된다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고, 서로 사고 싶다는 얘기를 주고 받았다. 이렇게 남이 원하는 걸 나도 원하게 되는게 타자의 욕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이워치2가 나온 시점에 갑자기 아이워치를 사고 싶은 생각이 드는 내자신을 보면서. 아이워치가 필요없어라고 쿨한척 한 말은 사실 '가지고 싶다'는 무의식의 표현이 아니었는가. 그래서 상징계-연표주체-의 말은 늘 무의식을 숨기고 왜곡하기 때문에 잘 해석해야 한다고 한 것이 아닌가.


근본적 결여 탓일까. 왜 이다지도 손톱만큼의 편리함, 더 좋은 것에 집착하게 될까. 축구화를 사놓고도 네이비-주황색의 그라데이션과 약간 달라보이는 스터드에 이 제품은 어떤 '맛'일까를 기대하면 또 사고싶다는 생각을 할까. 사고 나면 별 의미 없다는 걸 알면서도. 정말 잡혀 죽을 줄 알면서도 집어등을 보면 달려드는 오징어 신세같다는 한탄을 하면서도. 소비는 마약중독과 같다. 매력적인 한장의 사진을 보고도 그걸 안 살수 있는가. 본 다는 건 정말 무서운 일이다. 


그런데, 이런 질문이 계속 든다. 어떻게 인간이 더 좋은 것의 유혹을 떨져낼 수 있지 ? 돈이 '없어서' 못사는 거 말고 돈이 '있는데도' 안 살수 있는가 말이다.